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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쓴 것/글

음, 어떤 이야기냐면요...

inwithme.tistory.com/115



와! 오늘은 좀 일찍 왔네요. 당신을 덜 기다려도 되서 좋아요.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요? 대답해 줄 거란 기대는 안 하니까 내 이야기나 할게요. 음, 칵테일 마시러 온 평범한 손님이 둘에 총 사러 온 평범한 손님이 하나… 아! 아까 라디오에서 괴담 특집을 하더라구요. 이 계절에 무슨 뒷북인지! 뭐, 그래도 재미는 있었어요. 그런 이야기에 흥미가 있는 편이거든요. 제가 정비병으로 일하던 때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들어볼래요?
싫어요? 그래도 얘기할래요. 당신은 내 상대를 통 안 해주니까 사운드가 빈다구요. 조용한 건 별로에요, 오히려 시끄럽고.

음… 어떤 정비부대에서 있었던 일이래요. 어느 병사 하나가 자기 상관의 수상한 밤외출을 알게 됐죠. 일단 밤에 몰래 나간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상쩍은 일이지만요. 가장 이상한 건 정비함을 챙겨간다는 점이었어요. 생각해봐요. 어떤 이유가 됐던 전쟁이 벌어지는 정글의 한밤중으로 걸어 들어갈 때는 총 고치는 도구보단 총 자체가 더 도움이 될 거라구요. 수상한 일 맞죠? 하지만 궁금한 걸 곧이곧대로 물어보는 건 뉴메카인다운 행동이 아니지 않겠어요? 그녀도 그걸 알고는 침묵했어요. 하지만 그 마음 속에선 파헤치지도 털어놓지도 못한 의문이 하나 둘 쌓여가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그 상관이 그녀를 조용히 불러서는 이렇게 말했어요.
"아무 것도 묻지 말고 도구 챙겨서 나와라." 라고.
그녀는 공구함을 챙겨들고 상관의 뒤를 따라나섰어요. 마음 속에서 두려움과 호기심이 서로의 꼬리를 쫓는 동안 그녀의 상관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앞장 섰죠. 정글 사이로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어느 막사였답니다. 그 안에는 총, 총, 총... 온통 총 뿐이었어요! 망가지고 수리가 필요한 총이 잔뜩 있었죠. 얼마나 거칠게 다루면 그렇게 될까요? 총기 사용자로서의 견해는 어때요?
그런데 막사에 총만 있는 건 아니었어요. 담당자처럼 한 쪽 구석에 서 있는 군인도 하나 있었죠. 특이하게 생긴 군복에, 앳된 얼굴을 한 군인 말이에요.
그녀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도 그럴 게 그녀 자신이 아직 십대... 그러니까 ■■살이었으니까요. 살보다 앳되어 보인다면 도대체 몇 살인 걸까요? 그런 나이인 사람이 군인일 수 있을까요? 하지만 나는 나는 이 부분을 곱씹을 때마다 항상 이런 의문부터 들곤 해요. 그 차림으로 태어난 것처럼 군복이 어울리는 소녀는 도대체 어떤 아이러니일까요?
하지만 가장 이상한 건 따로 있었어요. 막사에 들어선 사람이 두 명인 걸 처음 마주했을 때, 그 군인의 표정은 퍽 어리둥절 했거든요? 그야 그렇겠죠. 평소 같으면 정비병은 한 명일테니까요. 하지만 무슨 말을 붙일 틈도 없이 순식간에... 말하자면 눈 한 번 깜빡일 찰나에 모든 걸 알았다는 듯이 툭 내뱉더군요.
"오, 알겠어. 신뢰가 배신 당하지 않길 빌지." 그러고는 망토자락을 휘날리며 막사를 나가버렸죠.

그리고 어떻게 됐냐고요? 거기 놓인 산더미 같은 총을 수리해야 했기 때문에, 호기심이 두려움을 앞서지 않을 수 있었어요. 정말 운이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억눌린 호기심이 뒤늦게 부풀어 오른 건 수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고, 그걸 눈치라도 챈 듯이 상관이 먼저 말을 꺼내왔어요.
"너도 알겠지만 대답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내 신뢰를 배신하지 마." ...그래서 물었어요. "왜 저입니까?"
알죠? 때로는 짧은 문장이 큰 의미를 품는다는 거... 돌아온 대답도 그랬어요.

"그런 질문을 고를 사람이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는 위험한 호기심을 감출 줄 아는 사람이라서, 라고 해석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그걸 해내지 못한 사람들은 어느샌가 사라져 버리니까요. 이 도시가 늘 그렇지 않던가요? 어쩌면 이야기 속 군인처럼 잘 처신하라는 게 이 이야기의 교훈일지도 모르죠. 그 군인이 침묵을 선택한 덕분에 지금 여기서 내가 당신한테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야길 하고 보니 생각난 건데, 막사 속 앳된 군인이 입고 있었다는 특이한 군복... 왠지 당신 옷이랑 닮았을 것 같아요. 마침 망토기도 하고.